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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Movie

실화영화_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

by 시샘별 2017.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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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듣고 단번에 '아, 영어 잘 못 하는 사람이 영어 배우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은 코미딘가 보네.'하고 감이 왔다. 주인공이 나문희 씨와 이제훈 씨이며, 구청에 민원 넣기가 취미인 할머니(나문희)가 영어를 잘하는 구청 직원(이제훈)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 조르다 배우게 된다는 스토리의 일부를 알고 난 후엔 '할머니가 예전에 자식을 해외로 입양 보냈고만? 안 봐도 스토리 쫙 나오네.' 하고 김이 팍 새서는 평이 기대 이상으로 좋고 흥행 성적 또한 좋다는 얘기가 들려와도 외면했었다.

열성적이진 않아도 현재 영어 공부중이라 다른 건 몰라도 할머니가 영어 공부하는 과정이 궁금하긴 했지만, 초중반은 신나게 웃음을 유발하다 끝에 가서 눈물을 유도할 게 뻔할 텐데 결단코 감독의 의도대로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무료 영화로 풀려서 케이블에서 지겹도록 방영해주면 그때나 보려나 했는데.. 스토리의 팩트를 알고 나자 진중하게 볼 마음이 생긴 것!
예상과 달리 입양 얘기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고..

이전에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있었다.
귀향과 눈길..
하지만 난 일부러 보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보면 풀리지 않는 억울함과 화로 스트레스만 한가득 받을 것 같아서 나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토리로 봤을 때 뒤에 가서 뻔한 감동 연출이야 있겠으나 귀향이나 눈길 보다는 덜 무거울 것 같아 감내하고 보기로 했다.

** 이후 스포주의!!


영화는 시장 상가 재개발 철회를 필두로 각종 민원을 수시로 다량 제기하는 나옥분 할머니와 원리원칙주의자 공무원 박민재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팽팽한 둘의 대립은 영어를 꼭 배워야 하는 목적을 가진 할머니가 원어민과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박민재를 목격한 뒤로 다짜고짜 영어를 가르쳐 달라 조르면서 잠시 민재가 우위에 서는 듯 하지만, 할머니가 자신의 동생을 돌봐주고 있었음을 알고서 고마움에 할머니의 영어쌤이 되어주기로 한다.


이후 부모가 없는 민재 형제와 홀로 사는 나옥분 할머니는 종종 저녁을 함께 들고 추석을 함께 보내기도 하며 가족처럼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자신이 제기한 시장 상가 재개발 철회 민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알고 그 일로 노해 민재와 크게 다투고, 그동안 꽁꽁 감추고 살아왔던 과거, 위안부 피해자였음를 밝혀 주위를 놀라케 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하소연을 하는 나옥분 할매.

위안부에서 돌아왔을 때 그 사실을 은폐하려 했던 엄마에게 왜 그랬냐며 니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해줄 순 없었냐며 울부짖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다른이도 아닌 내 부모가 내 가족이 나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이 얼마나 아팠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집으로 돌아와 더 힘들었을 것이다.


갠적으로 가장 슬펐던 장면.

과거에 위안부였음을 밝힌 후 가장 친하게 지냈던 동생 진주댁이 자꾸만 자신을 피하자 내가 더러워서(?) 그러냐고.. 이런 나하고는 친구할 수 없냐면서 직접 묻는 옥분 할매.

진주댁은 말한다.
서운해서 그런다고..
자기가 못미더워 말 못 한거냐고..
혼자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 거냐고...

어떤 감동 연출이 있든 절대 울지 않으리라 굳게 맘먹었는데,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을 쏟고 말았던...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

치매에 걸린 친구를 대신해 미국 의회 공개 청문회에 서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는 장면에선 비로소 본 영화가 실화였음을 알게됨과 동시에 그 사건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직접 검색을 해서야 2007년 일본의 위안부 사죄를 촉구하는 미국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이용수, 고 김군자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07년에 난 뭐하느라 그 사실을 몰랐을까?

솔직히 영화는 스토리가 많이 허술한 편이다.
옥분 할매가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힌 뒤부터는 모든 갈등과 문제들이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해결된다. 시장 상가 재개발 철회 문제는 해결 과정도 없이 끝에 가서 잘 처리된 것 처럼 나오고, 할머니에게 적개심을 갖고 있던 시장 상인들과 구청 직원들의 할머니에 대한 태도도 오해를 푸는 과정없이 원만하게 되고, 옥분 할매가 위안부 피해 증언을 못 할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 서명 운동을 벌인다든가 민재가 위안부 시절의 사진을 들고 직접 청문회장으로 찾아가는 모습 등은 청문회 일자와 그 준비 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치있는 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자연스레 끌어냈다는 게 아닐까?
나처럼 사실을 알아도 끝이 없는 긴 싸움을 지켜보며 지쳐버린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어쩜 우리 주위에도 옥분 할매처럼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그분들을 비롯해 피해 사실을 밝히고 전면에 나서 외로운 투쟁을 하고 계신 할머니들 살아 생전에 사과를 꼭 받아내야 하는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별세 소식이 들릴 때면 너무 안타깝다.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만큼 위안부 문제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외로운 싸움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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