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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Movie

'립반윙클의 신부' 스페셜 에디션_스포있음

by 시샘별 2017.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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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이와이 슌지 감독의 대표작인 '러브레터', '하나와 앨리스', '4월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다 보았다.
세 작품이 다 첫사랑을 주제로 해서 그런지 '이와이 슌지' 하면 '감성멜로' 라는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그래서 '립반윙클'의 신부도 비슷한 느낌의 영화겠거니 했다.

이 장면은 스틸컷과 영화 예고편에는 나오지만 2시간 짜리 정식 개봉작에서는 나오지 않고, 3시간 짜리 스페셜 에디션에만 나오는 장면이다.

일본 전통 결혼식에서 신부가 쓰는 와타보우시를 닮은 종이 가면을 푹 뒤집어 쓰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종이 가면 → 와타보우시 → 신부'
라는 연상 작용 때문인지 '립반윙클의 신부'란 제목과 딱 들어맞아 보이는..

첫 느낌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듯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저 마다 하나씩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볼수록 처음의 그 느낌은 점점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얼굴의 반이 가려져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선이 여리여리하고 고운 것이 천상여자다운... 그러나 꼿꼿이 서 있는 자세와 꾹 다문 입술이 제법 다부져 보이는... 보이진 않지만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 끝엔 뚜렷한 대상이 있을 것이며, 그 두 눈은 틀림없이 확신에 차 빛나고 있을 것 같았다.

이 영화를 두고 고구마 같다 라는 평이 많아서 보기가 꺼려졌지만, 이 스틸컷이 전해주는 느낌을 믿어 보기로 했다.

미나가와 나나미(쿠로키 하루).

임시 교사직과 편의점 알바를 병행하는 나나미는 작은 목소리와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짖굳은 장난을 쳐도 그저 당하고만 있을 뿐 호통 한번 치지 못하고, 그것이 문제가 되어 잘리게 된다.

바람을 폈다는 오해로 이혼 위기에 처했을 때도 남편이 믿어주든 믿어주지 않든 일단은 자초지정을 설명해야 함에도 어버버거리기만 할 뿐 말 한 마디 똑부러지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유일하게 sns상에서는 맞선 사이트에서 만난 남자 친구를 두고 쇼핑하듯 쉽게 손에 넣었다고 표현할 만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있어 거침이 없다.

sns를 통해 만나게 된 '아무로'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한번은 의심해볼만 하건만 갓 태어난 아기새가 처음 본 생물을 자기 어미인 줄 착각하는 것마냥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를 믿고 따른다.

그녀에게 있어 '아무로'는 자신이 끙끙 앓으며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시원스럽게 툭 내놓는 sns 친구 '렘버럴'을 대신해 현실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이 아무로는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그녀의 믿음을 이용,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쥐고 뒤흔들기 시작한다.

사토나카 마시로(코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는 함께 죽어줄 사람을 아무로에게 부탁, 그렇게 나나미를 소개받는다.
아무로의 주도로 결혼식 하객 알바로 만난 두 사람은 이후 대저택에서 메이드로 함께 지내게 된다.

이 세상은 사실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고, 모두들 자신을 잘 대해준다고 마시로는 나나미에게 말한다.
편의점 점원은 부지런히 자신이 산 물건을 담아주고, 택배 아저씨는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물건을 가져다 주고, 비오는 날 모르는 이가 우산을 씌워준 적도 있다고...
하지만 자신은 행복의 한계점이 보통 사람들 보다 빨리 찾아와 사람들의 그런 친절함을 보면 이내 부서져버린다고...
사람들의 친절함이나 진심이 너무 또렷이 보이면 다들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를 거라고..
돈은 아마도 그런 것들을 보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걸 거라고...
그래서 자신은 돈을 지불하는 게 편하다고...

그녀에게 있어 나나미가 주는 조건없는 순수한 진심은 눈물나게 고맙고 행복하면서도 무서웠으리라..
그런 나나미를 돈을 주고 산 자신이..
나나미를 두고 먼저 가야하는 것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그동안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뚜렷한 자신의 소신없이 누군가에게 쉽게 맘을 열고 의지하는 나나미의 성격이 너무 답답했는데, 바로 그런 성격 때문에 아무로가 예상한 시나리오와 달리 그녀는 영원히 잠든 마시로의 곁에서 이전처럼 아침을 맞게 된다.

나나미와 마시로의 관계는 전혀 예상 못했던 전개라 꽤 신선했다.
둘만 떼어놓고 보면 퀴어 영화이면서 버디 영화 같았다.

아무로가 마시로를 두고 위험한 사람이라고 나나미에게 얘기했을 때 그땐 아직 진실을 몰랐어서 멋대로 추측해 보길 마시로가 사이코패쓰인가? 아님 동성애자인데 별난 성적 취향을 갖고 있나? 라는 상상을 했었더랬다.

둘다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마시로의 비밀이 사실은 함께 죽어줄 사람을 원했었다는 건 가히 충격적이었다. 비록 동기는 순수하지 못했으나 결론적으로 목적을 이루지도 않았고, 둘 사이에 나눈 교감은 진심이었기에 마시로가 밉지는 않았다.

진짜 나쁜놈은 단 한 명 아무로..

아무리 돈 되는 일은 다 하는 인간이라지만, 나나미의 결혼을 성사시키는데도 이혼시키는데도 가장 큰 일조를 하는 인물이다.

더 무서운 건 그녀를 이혼하게 만든 이유가 마시로에게 그녀를 데려다주기 위해서였다는... 이 부분은 영화에선 그저 추측해지나지 않았는데, 책에서는 아무로가 자신의 입으로 그 사실을 직접 말한다.

나나미가 결혼할 땐 하객 알바를 주선해 돈 벌어.. 그 뒤엔 남편 뒷 조사 의뢰를 받아 돈 벌어... 나나미 시어머니에게 접근해서는 이혼 조작으로 돈 벌어... 그보다 앞서서는 더 큰 그림의 의뢰인인 마시로에게서 돈 벌어...

그런 아무로라서 나중에 마시로의 영정 사진 앞에서 그가 보인 행동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그나마 이미 계산(?)이 깨끗하게 끝난 뒤에 한 행동이었기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 있긴 했었나 싶기도 하다.

영화 속 나나미는 마지막까지도 그 어떤 진실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니 아무로를 향해 여전히 해맑게 웃고 고맙다 말했겠지.
그래도 그녀는 이전과는 달리 한층 밝아지고 강해진 것 같았다.
마시로와 함께 한 시간들때문이었으리라.
마시로가 끼워준 반지가.. 마시로가 늘 함께 하고 있다고 믿기에...

마지막에서야 그녀, 나나미가 쓴 종이 가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그녀가 이용했던 sns '플래닛'의 캐릭터!

그 모습이 sns에 갇혀 사는 연약한 모습으로 보이진 않았다.
비록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긴 하지만,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진짜 세상이리라.

마시로(그녀의 플래닛 아이디가 바로 '립반윙클'이다)와 함께 했었고, 앞으로도 헤쳐나갈 세상 말이다.
'립반윙클의 신부'로서 당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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